1. 미국은 식민지배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나라에 배를 왜 보냈을까?
잊고 있었는데 미국도 알래스카, 하와이, 괌,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쿠바 등등 작은 섬나라 위주의 식민지가 있었음. 후발주자여서 기간이 길지 않았던 탓에 잊고 있었나 보다.
조선에 오게 된 계기는 청과의 무역에서부터 시작한단다. 청과의 무역에서 큰돈을 벌고 중국의 큰 시장을 탐내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서부 지역을 점령하지 않았을 때라 대서양-희망봉-인도양 루트로 청과 교역했다. 이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태평양 연안 국가가 되었고, 청으로 가는 태평양 항로의 중간 기지로 일본, 조선을 원했다.
2.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는 강화도 외규장각의 도서를 약탈하고 건물을 불태웠는데 도서를 다 가져간 걸까, 일부만 가지고 나머지는 태운 걸까?
5천여 점의 문서들이 있었는데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조선왕조의궤 297권만 챙기고 나머진 불태웠다고 한다... 한자문화권 국가였으면 좀 더 가져갔을까? 그럼 반환 못 받았으려나...
여담으로 외규장각이 포켓몬 GO 체육관으로 지정되어있다고 한다. ㅋ
3. 제1차 갑오개혁 당시 일본이 개화 반대파인 흥선대원군을 섭정으로 영입한 이유?
모든 정책 추진은 군국기무처를 통해서 진행했고, 흥선대원군은 결재권이 없는 바지사장.
친청인 명성황후 일파를 견제하면서 일본의 강요에 의한 개혁이 아닌 조선 정부의 개혁인 것처럼 위장.
흥선대원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고 동학 농민군에게 밀지를 보내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작전을 펼쳤으나, 일본에 들통나 4개월 만에 밀려났다고 한다.
4. 좌익 세력은 왜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결정 사항에 대한 총체적 지지로 선회했을까?
실제 협상 내용을 보고 회의 결정의 본질이 식민 통치 연장이 아니라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과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절차라고 판단.
조만식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세력은 신탁 통치를 반대했으나 축출되어 김일성 중심 체제 성립
5. 좌우 합작 운동을 지지하던 미군정은 왜 지지를 철회했을까?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 발표 이후 미소 냉전 본격화되며 공산주의 세력과 타협하는 온건 노선 대신 반공주의를 최우선으로 삼는 정책으로 선회
트루먼 독트린: 공산주의 확산을 막고 자유주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사 및 경제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미국의 외교 정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반군의 위협을 받던 그리스와 소련의 압박을 받던 터키 지원
6.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는 왜 제외되었을까?
1. 애치슨 라인 안의 지역을 보면 모두 미군이 직접적으로 관할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연합군 점령하에 있었고,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 막 독립한 신생국이었음. 한국과 대만은 독립국으로 자국의 군대도 있었으니 빠지는 게 맞다는 것.
2. 방어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해당 국가가 버티는 동안 유엔을 통해 도움을 준다는 것
한국전쟁 연구자들은 애치슨 선언이 북한의 남침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네요.
7. 이승만은 왜 친일파 청산에 처음부터 소극적 태도를 보였을까?
미 군정은 남한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약점이 있는 친일파들을 관리로 임용했고, 오랜 망명생활로 국내 지지기반이 약했던 이승만은 미 군정 아래 친일파 출신 관료들을 흡수한다. 이후 국회 프락치 사건, 6.6 반민특위 습격 사건 등으로 반민특위를 방해함.
그럼 지지기반이 약한 이승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은 남북협상 파행 등으로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 참여하지 않거나 정치적 주도권을 상실했고, 중도•좌익 세력은 미군정의 탄압과 배제로 제도권 정치에서 밀려남. 이승만은 미주 지역의 오랜 독립운동으로 미 고위 관료들과 인맥이 있었고, 철저한 반공주의 노선을 고수했기에 미군정의 지지를 받음. 대한독립촉성중앙협의회 등 거대 대중 단체를 조직, 기존 우익 세력 흡수해 남한 내 반공주의자와 우익 진영도 이승만을 지지. 국회 내에서 반공 우익 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해 간접선거에서 당선.
답을 찾으면서 느낀 건데 이거 학창 시절에 다 배웠던 거 같음. 특히 3번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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